도시마다 노인과 자동차는 늘고, 아이들은 줄어든다. 그래서일까? 주차장을 포함한 어른들을 위한 건물은 나날이 늘어나고, 동네에 놀이터는 없어진다. 싱가포르도 한국 못지않게 출산율은 낮고, 인구노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다양한 놀이터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싱가포르 역시 한국 못지않게 부동산이 중요한 나라이다. 하지만, 협소한 공간일지라도 마을 어귀마다 놀이터를 ‘높게’ 조성해서, 아이들이 몸으로 놀 수 있게 한다. 이른바, ‘수직 놀이터Vertical Playground’다.

협소한 운동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수직 놀이터'를 선택한 탕린트러스트학교Tanglin Trust School, 싱가포르 / @Playpoint
‘하이월홀라 High Wall-Holla’ 구조라고 부르는 수직 놀이터의 골격은 인공 고무 바닥에 철망 케이지 구조에 여러 층을 더해, 건물 삼 층 높이까지 올린 것이다. 5세에서 12세의 어린이를 30명까지 놀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에 36개의 수직 놀이터가 시공됐다.
싱가포르의 플레이포인트는 놀이터 디자인에 특화된 회사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이나, 쇼핑몰 안의 실내 놀이터뿐만 아니라, 마을의 공공 놀이터나 콘도의 사설 놀이터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자랑한다.

비샨Bishan 23거리 229동, 싱가포르 / @Playpoint
7미터 높이의 삼 층짜리 큐브 타워는 여느 동네 놀이터에서 보기 어려운 대담한 디자인이다.

쇼우플라자Shaw Plaza, 싱가포르 / @Playpoint
쇼우플라자는 극장 건물이다. 극장 카페 옆 테라스에 협소 놀이터는 비 오는 날에도 놀이터를 즐기고 싶은 아이들로 붐빈다. 월홀라 시설에 ‘플레이마운드Playmound’와 ‘트램폴린Trampoline’ 같은 추가적인 놀이 시설을 더했다.


쇼우플라자Shaw Plaza에 설치된 플레이마운드(위)와 트램폴린(아래) / @Playpoint

네스트D'nest, 싱가포르 / @Playpoint
콘도 수영장 옆에 들어선 놀이트로, 일반적 월홀라와 달리 물에 강하고 부드러운 해먹 형태로 시공했다.

에스텔라 플레이스Estella Place, 베트남 / @Playpoint
쇼핑몰 안의 테라스에 지어진 놀이시설로, 암벽등반 시설까지 갖췄다.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의 놀이터 공간을 주차장으로 개조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인가 싶다가도, 몇 안 되는 아이들이라도 뛰어놀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줄어드는 것은 야박하지 않은지 한숨이 난다. 땅은 귀하다. 땅이 비단 부동산만 의미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돈을 벌지만, 땅을 어른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바깥에서 뛰어놀던 체력과 기억으로 어른의 삶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 협소한 땅이라도, 마을에 남은 단 한 아이를 위해 놀이터는 보장돼야 한다.

사실, ‘월홀라wall-holla’ 구조라고 부르는 수직 놀이터의 기본 골격은 2005년 네덜란드 건축디자인회사 ‘카브Carve’에서 처음 디자인했다. 플레이포인트는 카브의 월홀라 구조를 적극 수용해서, 싱가포르와 아시아의 상황에 맞는 디자인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플레이포인트와 카브는 서로를 협업 파트너로 부르며 디자인 교류를 하고, 차세대 디자이너를 육성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의 디자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지만, 적극적인 협업의 태도에 싱가포르의 자본이 더해져서 극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은행 건물이 늘어나는 만큼, 놀이터와 도서관이 늘어나는 것이 균형적인 도시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교육열과 사회 경쟁이 심하고, 부동산의 가치가 높은 싱가포르와 한국 같은 나라에서 놀이터 확보는 미래 세대의 정신 건강을 위해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
부럽네요. 요즘 우리 아파트도 주차난으로 아이들이 놀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거든요.
중딩이 된 딸래미들도 자기들 놀이터 없앤다고 어찌나 난리 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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