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킨백부터 헤드폰까지, 자유롭고 제약 없는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트렌드가 없는 것이 트렌드’라는 말이 생길 만큼, 요즘 시대에는 다채로운 취향과 디자인들이 사회 전반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만큼 일관된 유행이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Z세대의 특징은 무엇일까? 바로 무엇이든지 ‘꾸미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휴대폰, 다이어리, 보조 배터리, 가방 등, 일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에 자신만의 개성을 더하는 것이 요즘 세대의 특성이다.
줄임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을 반영하듯, 꾸미는 대상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양해졌다. 다이어리(다꾸), 폴라로이드(폴꾸), 신발(신꾸), 휴대폰(폰꾸), 에어팟(팟꾸), 가방(백꾸) 등, 다양한 ‘~꾸’가 선보이며 사람들의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단어는 유쾌함을 선사하지만 꾸미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꽤나 진심이다. 인스타그램, 블로그에서 엿볼 수 있는 이들의 열정에서, 무언가를 꾸미는 일이 이렇게나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열풍에 힘입어, ‘별 걸 다 줄여 쓴다’를 줄인 ‘별다줄’에서 파생된 ‘별다꾸(별 걸 다 꾸민다)’란 단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와 더불어 자신의 취향에 맞춰 기능 및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뜻하는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을 줄인 ‘커스텀’ 또한 트렌드를 대변하는 단어로 활용되고 있다.
‘별다꾸’,’커스텀’ 열풍이 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Z세대가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경험’을 중요시한다. 자신의 꾸미기 취향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 모두가 어디에서나 누릴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추억’이 된다. 그와 더불어 무엇보다 ‘재미있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꾸민 결과물 못지않게 그 과정도 중요하게 여긴다.
누구나 비슷한 물건을 소유할 수 있지만, 개인의 취향이 더해지는 순간 그 물건은 단순한 소유물을 넘어 나만의 특별한 존재가 된다. 어떻게 보면 꾸미기는 스스로 ‘나만의 한정판’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명품에는 열광하지 않지만, 내가 열광할 수 있는 물건에는 진심을 다하는 세대의 마음이 반영된 활동인 것이다.
꾸미기 열풍이 어딘가 모르게 친근하다면? 맞다. 20여 년 전, Y2K라 불리던 2000년 대에도 유행했었다. 현재처럼 휴대폰에 다양한 키 링을 주렁주렁 달기도 했고, 휴대폰 자체에 여러 가지 파츠를 붙여 화려하게 꾸미기도 했다. 다마고치, 닌텐도 DS와 같은 게임기, CD 플레이어를 꾸미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였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일은 지금처럼 1020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티커는 물론이고, 예쁘게 글씨를 쓰기 위한 컬러 펜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예 다이어리 자체를 만드는 것도 인기가 높았다. 레트로의 주체가 Y2K가 되면서 꾸미기가 자연스럽게 다시 유행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꾸미기 열풍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인 듯하다. 해외에서는 ‘제인 버키니파잉(Jane Birkinifying)’이 붐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름 그대로 영국 여배우 겸 가수이자 에르메스의 뮤즈인 제인 버킨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녀는 평소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에르메스 버킨 백에 키 링, 리본, 스티커 등으로 자유롭게 꾸미며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냈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의 독특한 스타일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중이다.
이는 새로운 아이템을 사지 않아도 새로운 패션 감각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을 드러내는 일이 친환경적인 선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래서 두아 리파, 지지 하디드 등 유명 셀럽들이 나서서 가방을 꾸미기 시작했고, 이어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크게 붐을 일으키며 Z세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핀터레스트에서는 ‘제인 버킨의 미학(Jane Birkin aesthetic)’에 대한 검색이 150% 증가했으며, 틱톡에서는 ‘백 참(Bag Charm)’에 대한 게시물 태그가 만 개가 넘어가는 등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시작은 버킨백이었지만, 사실 어느 가방이든 꾸미면 개성 표현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에 다양한 가방에 키 링, 참 등이 더해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흐름을 읽은 미우미우는 2024 봄·여름 컬렉션에 각종 소품을 달고, 제인 버킨처럼 무언가를 잔뜩 넣은 가방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트렌드 선구자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브랜드 발렌시아가는 아예 아이코닉한 참과 키 링을 활용하여 본인의 스타일대로 꾸밀 수 있는 컬렉션 ‘참 바(Charms Bar)’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IT 기기에서도 꾸미기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이다. 노트북을 다양한 스티커로 꾸미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는 커스텀 키보드 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정식 출시 39일 만에 100만 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던 갤럭시 Z 플립 3의 인기 비결은 폰을 꾸밀 수 있는 요소가 곳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기의 형태뿐만 아니라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꾸미기 키트들은 개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도 각광받는 헤드폰에 자유자재로 개성을 더하는 것도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스피커 회사 보스(Bose)가 액세서리 브랜드 수잔 알렉산드라(Susan Alexandra)와 협업을 통해 헤드폰을 꾸밀 수 있는 한정판 키트를 선보인 것도 이런 흐름에 따른 것이다. 헤드폰에 걸 수 있는 참과 스티커는 사용자의 개성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으로 충분해 보인다.
작년부터 패션계에서는 차분하고 깔끔하면서 고급스러움을 드러낼 수 있는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이 유행했었다. 이어 올해에는 ‘드뮤어(Demure)’가 그 바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세대들이 조용한 룩과 자세를 따르는 모양새를 보이는 가운데, 이에 반항하듯 Z세대를 중심으로 화려하고 복잡한 개성 표현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울 따름이다.
어느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열풍으로 번지는 이 유행을 가리켜 트렌드 예측 기관 WGSN에서는 ‘혼란스러운 커스터마이제이션(Chaotic Customization)’이라고 칭하며 자유롭고 제약 없는 형태로 자신을 표현하는 이들의 성향을 설명했다.
이 트렌드는 소재 생산, 제작, 재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을 해결하려는 산업계의 노력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WGSN의 데이터에 따르면, ‘액세서리의 액세서리’는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사랑을 받을 예정이며, 2026년 가을에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트렌드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에게 WGSN는 참, 구슬, 체인과 같은 장식을 사용하거나 재활용 소재, 미판매 재고품 및 업사이클 된 빈티지 요소들을 활용하여 물건에 독창성을 부여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공방이나 워크숍에서 진행되는 DIY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보스와 협업을 진행했던 수잔 알렉산드라의 디자이너 수잔 콘 (Susan Korn)은 꾸미기 열풍을 ‘일상적인 경험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가장 평범한 아이템조차 개성 넘치는 무언가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태도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반영하는 것이며, ‘별다꾸’ 트렌드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젊은 세대의 트렌드로만 치부하기에는 ‘별다꾸’가 지닌 의미가 깊다. ‘뭘 그렇게까지 열심일까?’라고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진정성은 모든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시대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 유행은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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